geek과 非geek

2026. 9. 23. 04:53ㆍ탁상게임 취미생활

전에도 이런 글을 썼는데요.

여기저기 흩어진 제 글을 하나의 게시물로 정리해서 쓸 생각을 했고

일반인이라는 표현에 지적을 받아 geek과 非geek이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습니다.

 

보드 게임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만 저는 테이블탑 게임, 즉 탁상 게임이라는 말을 선호합니다.

보드가 없는 탁상 게임도 있는데, 보드 게임이라는 말은 보드가 있는 게임만 뜻해서 쓰기도 하고,

보드가 없는 테이블탑 게임 일체를 뜻해서 쓰기도 해서 모호하거든요.

 

0. 우리는 geek입니다.

1. geek들은 '이게 뭐가 어려워?' 할 수 있는데 非geek들에게는 어렵고 수고로울 수 있습니다.

2. 非geek들은 물건 오염, 손상에 geek들에 비해 무신경합니다.

3. 非geek들은 탁상 게임에 인원수가 중요하다는 걸 잘 몰라서 시각 약속에도 무신경합니다.

4. geek들은 다른 많은 것들을 제치고 탁상 게임이 우선순위입니다.

 

 

 

 

0. 우리는 geek입니다.

더닝크루거 효과라고 있습니다.

다들 '나는 평범하겠지(중간보다 조금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다보니

상위권인 사람은 실제 자신의 상대적 위치보다 자신의 위치를 낮게 평가하고

하위권인 사람은 실제 자신의 상대적 위치보다 자신의 위치를 높게 평가하는

왜곡이 있다는 개념입니다.

 

보드라이프에 접속하는 우리도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특수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탁상 게임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가족, 지인들이 탁상 게임을 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나옵니다.

네, 보통 주변 사람들은 우리와는 달리 탁상 게임에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국내 신작이 나오면 웬만하면 다 산다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그렇지만 웬만한 게임은 1000개가 채 안 팔려, 증쇄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인기 있어서 증쇄 되는 게임은 소수 비율이죠.

전 국민의 0.00196%만 하나씩 사면 1000개인데 말이에요.

 

보드라이프 이용자가 약 20만 명이라고 추산하면

전 국민의 99.6%는 보드라이프에 접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 글에서 '남이 시키지 않아도 탁상 게임을 스스로 하는 사람'을 geek이라고 하겠습니다.

할 때는 무거운 게임에서 고득점하는 사람도, 남이 하자고 할 때만 하는 사람이라면 geek이 아닙니다.

 

우리가 geek이라는 걸 인지하고, 非geek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래서 갈등을 예방하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입니다.

 

1. geek들은 '이게 뭐가 어려워?' 할 수 있는데 非geek들에게는 어렵고 수고로울 수 있습니다.

곰잼님 영상에 어느 보드 게임 카페 난도 표시 판이 나오는데

베리 하드에 카멜업, 익스트림에 팬데믹, 카탄이 있습니다.

geek이 "이봐요 사장님, 뭘 모르시나 본데 그 게임들은 그렇게 어려운 게임이 아니에요. 아주 쉬운 게임들이라고요"라고 한다고 해서

사장님이 "아이고 고치겠습니다!" 할까요? 사장님도 쉽다고 안내하고 싶어해요. 손님들이 다양한 게임을 즐겨야 덜 질려서 업장을 더 많이 이용할 테니까요.

저 게임들을 어렵다고 표시한 건, 실제 일반적인 손님들의 반응을 본 결과입니다.

저도 어떤 손님이 스스로 스플렌더를 하려고 가져왔다가 이해를 못하는 걸 봤습니다.

 

게임이 뭐가 그렇게 힘들까요?

영상, 음악은 가만히 앉아 보면, 들으면 플레이가 됩니다.

책은 스스로 '읽기'라는 능동적 행동을 하지 않으면 플레이가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탁상 게임도 스스로 능동적으로 플레이하지 않으면 플레이가 되지 않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재미있고 유익한 영상 콘텐츠가 많죠. 그래서 책 읽기를 평소에 많이(혹은 전혀) 하지 않는 분들이 있고

그런 분들은 갑자기 책을 읽어야 하게 되면 너무 부담스럽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탁상 게임도, 안 하던 분들이 갑자기 하려고 하면 많이 힘들어 할 수 있습니다.

 

전자 게임은 규칙상 할 수 있는 것만 실행됩니다. 버튼은 버튼처럼 생겼고, 안 눌리는 건 안 눌립니다.

탁상 게임은 뭐가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플레이어가 스스로 다 알아야 합니다. 규칙을 모두 숙지해야 합니다.

아컴호러 카드 게임같은 게임이 특히 이런 점에서 어렵습니다. '내가 뭔가 깜빡한 건 아닐까?'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플레이 타임도 다릅니다.

'보드게임'이라고 하면 非geek들이 떠올리는 건 할리갈리 등 30분 이내의 게임입니다.

geek들은 으레 2시간짜리 게임을 합니다. 30분의 4배죠.

非geek들이 긴 게임을 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어도

非geek들이 보통 그걸 할 마음의 준비가 안 돼있습니다.

 

영화 취미인 친구가 같이 영화보자고 해서 왔더니(2시간 예상)

8시간짜리 영화다?(예상의 4배) '아 이건 좀 힘들다' 하겠지요.

8시간짜리 영화 보는 게 불가능한 일이냐? 하고 물으면

'아니 뭐 불가능하진 않다'고 대답하겠지요.

근데 그건 非geek의 영역이 아니고 geek의 영역입니다.

미리 얘기해서 '난 너랑 이걸 보고 싶은데, 6시간짜리다. 볼래?' 했을 때 오케이 한 친구만 데리고 보면 문제가 없습니다.

2시간짜리, 3.0 이상 보드게임은 非geek들에게는 6시간짜리 영화같은 것입니다.

"그래봤자 게임인데, 10세, 14세 이상 이용가인데 다 할 수 있지, 뭐 불가능하냐?"라며 츄라이하려는 분들을 봐서 하는 말입니다.

 

2. 非geek들은 물건 오염, 손상에 geek들에 비해 무신경합니다.

非geek들은 카드 휘어잡기, 손톱으로 찍기, 펜 끄적거리기, 음식 양념 묻히기 등 구성물에 손상주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들 행동들은 사전에 이야기를 해주는 게 좋습니다. 새 차/휴대폰 샀을 때 흠집 나면 마음 상하지 않느냐고, 마찬가지라고 해주는 게 좋습니다.

 

geek들은 자신이 유난 떠는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데, 非geek들 시각에서 보면 유난 떠는 게 맞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 원카드 했던 때를 생각하면, 플레잉 카드에 슬리브를 씌운 걸 본 적이 없습니다.

非geek들은 카드에 슬리브 하나하나 씌워진 것만 봐도 신기해하기도 합니다.

박스 비닐포장까지 하는 건 어쩌면 非geek들이 보기에 아주 변태적인 짓일 수 있습니다.

 

geek들이 물건을 가능한 한 새것같은 상태로 보존하고 싶어하는 건 결국 '팔 수도 있어서' 또는 '평생 소장할 수집품으로 생각해서'입니다.

팔 수도 있는 거라는 걸 알려주면 非geek들도 geek들의 유난을 보통 이해해줍니다.

非geek들도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보통 남 기분 크게 상하게 남 물건 함부로 해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게 큰 의미가 있는 행동인지 몰라서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양념 묻은 손으로 집더라고요..ㅜ 언젠가는 알아주겠죠?(당사자에게 말은 안 했음)” 이런 글들을 많이 봤는데요, 계속 말을 안 해주면 계속 모릅니다.

미리 한 번 얘길 해주세요. 말 안 하고 끙끙거리지만 말고, 사후적으로 화내거나 뒷담화하지 말고요.

非geek들용 게임을 별도로 두고 마음을 놓는다는 차선책은 많이들 쓰고 계시죠.

 

非geek들도 geek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지만

geek들도 非geek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아는 사람이 알려줘야죠.

'취급하는 방법이 특별한' 물건을 손대게 하면서, 취급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3. 非geek들은 탁상 게임에 인원수가 중요하다는 걸 잘 몰라서 시각 약속에도 무신경합니다.

평소 친구끼리 술 먹자, 어디 놀러 가자고 할 때 흔히 좀 늦는 것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경우와 별다를 것 없다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非geek들과 게임을 하려고 할 때에는 ‘이건 다 같이 모여서 설명을 듣고 시작해야 되는 거라, 시각을 잘 지켜야 돼’라고 미리 얘기하거나, 아니면 아예 마음을 놓고 늦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4. geek들은 다른 많은 것들을 제치고 탁상 게임이 우선순위입니다.

여가 중엔 1순위 혹은 only입니다. 그래서 특정 탁상 게임의 비교 대상은 다른 탁상 게임뿐입니다.

非geek들은 탁상 게임 플레이는 즐거운 활동 후보 중 하나입니다. 다른 것들도 비교 대상이 됩니다. 드라마/만화/영화 보기나 나들이 가기가 더 좋을 수 있습니다.

geek들은 '웨이트 1점대 게임만 했어. 3점대 게임도 해야 해', '타일놓기 게임만 했어. 일꾼놓기 게임도 해야 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非geek들은 '탁상 게임을 했어. 이제 유원지 나들이도 갔으면 좋겠다. 왜 탁상 게임만 하려고 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가벼운 게임을 한 것은 geek도 '내가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춰준 것(다른 탁상 게임을 더 하고 싶었는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非geek도 '내가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춰준 것(탁상 게임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었는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얘기는 非geek 배우자가 있는 geek 분들과 주로 관련 있는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非geek과 할 게임 추천 목록...이 포함된 '진입장벽 수준별 추천 목록'은

작성한 지 5년이 지나서 조만간 갱신해야 할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