긱 평점과 편향 요인들

2021. 2. 26. 21:34탁상게임 취미생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긱 평점은 믿을 게 못 된다." / "긱 평점을 못 믿으면 믿을 수 있는게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객관(내지 간주관)주관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긱의 긱 평점, 평균 평점은 수많은 사람들의 투표에 의한 것이죠.

그런데 객관적(내지 간주관적)으로 좋은 게임인지는,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게임을 알아보고자 하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에게 주관적으로 만족스러울 것인가'입니다.

"긱 평점은 믿을 게 못 된다."라는 말은 "긱 평점이 높다고 해서 자신에게(모두에게)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믿을 수는 없다."로 해석해야 합니다.

 

주관적으로 만족스러울 게임을 찾으려면,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다른 개인의 평(주관적인 평)을 보는 게 낫습니다.

또는 자신이 좋아한 게임들을 살펴 보아, 어떤 '요소'가 있으면 자신에게 만족스러울 가능성이 높겠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에 관해서는 다른 글 '어떤 게임부터 알아볼 것인가'를 참고하시면 도움 되실 겁니다.

 

객관적(내지 간주관적) 평을 보든 다른 개인의 주관적 평을 보든, 그 평에 들어간 편향과 자신의 편향 간의 차이를 파악하고 말하자면 영점조정을 하여 참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아주 매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 甲이 어떤 음식을 먹고 "이거 그렇게 맵진 않네, 중간 정도네"라고 했다면,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래도 나한테는 많이 매울 수 있다"고 이해하듯

예를 들어 본인이 추리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객관적(내지 간주관적)으로 훌륭하다고 평을 받은 추리 게임도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긱의 평점에는 어떤 편향이 있을까요?

먼저 웨이트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지도, 매니악 게임 투표자들의 팬심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긱의 평점과 웨이트

 

'웨이트부심러'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벼운 게임은 무시하는 사람들을 말하죠.

심하게 무시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웨이트 높은 게임이 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입니다.

그럴까요?

연구자 Dinesh Vatvani님께서 분포를 분석한바 웨이트와 평점 간 정(+)의 관계가 나타났습니다.

 

An analysis of board games: Part II - Complexity bias in BGG

An analysis of the BGG top 100 and complexity bias in BGG

dvatvani.github.io

이 분포가, 게임을 그저 무겁게 만든다고 더 재미있어진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웨이트가 높은 게임들이 더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는 걸까요?

 

다음은 제 견해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실증 조사를 한 게 아닙니다.)

개별 게임을 비교하면 웨이트는 더 높은 게임이 재미는 덜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분포상 웨이트와 재미의 정(+)의 추세는 나타납니다.

하지만 추세가 있을 뿐, 관계가 선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재미 유발 요소를 이것 저것 작가가 넣다보면 웨이트가 높아집니다.

비유하자면 요리사가 음식에 재료를 이것 저것 넣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비용이 높아지고, 조화를 지키기 어려워집니다.

아주 간단하게만 만들 경우 비용이 크게 들지는 않지만 퍼포먼스에 한계가 보다 명확해지고, 뚜렷한 개성을 갖기 어렵습니다.

복잡하게 만든 게임들의 경우 구체적인 요소가 더 많이 들어가다보니 결과물도 다양해, 훌륭함의 정도도 보다 다양합니다.

아주 훌륭한 게임들은, 웨이트 낮은 게임 중에도 적고 웨이트 높은 게임 중에도 적습니다.

 

그런데 위 풀은, 전체 창작자의 머릿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전체 게임 풀입니다.

게이머들이 시장에서 접하는 게임들 풀은 다릅니다.

그냥 '존재하는 게임'을 보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게임들 중, 제법 유명한 게임'을 본다는 말이죠.

영화로 비유할 수 있는데요, 한국 극장에 상영되는 외국 영화들은 모든 외국 영화가 아니고,  '외국 영화들 중, 비교적 훌륭한 편이라서, 한국에까지도 들어올 수 있었던 영화들'입니다.

긱에는 현재 12만 개의 게임이 등록되어있는데 이것도 전부가 아니고 대부분 유럽, 미국 게임이며 성인 게임 위주입니다. 동양 게임, 아동 게임은 긱에 등록되지 않은 게임들이 많습니다.

등록된 게임 중에도 약 10만 개는 '순위'가 없습니다(투표자 수 30 미만인 게임들은 순위가 없다고 하는데, 거의 맞는 것 같지만 순위가 없는 게임 중 30 이상인 게임들도 있긴 합니다).

전체 게임 중 1%라고만 해도 1200개 이상인데 탁상게임을 1200개 이상 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빨간 선 아래 영역은 거의 시장에서 사장되는 게임들, 도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웨이트 높으면서 덜 훌륭한 게임은... 워낙 사람들이 안 하다보니 그런 게임이 있는 줄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은 게임들 중에서는, 가장 덜 훌륭한 게임들은 웨이트 낮은 쪽에 있으며 가장 훌륭한 게임은 웨이트가 높은 쪽에 있습니다.

 

어떤 게임이 세상에 실제 나오기는 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하면 그 게임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훌륭함이 부족한 게임들은 시장에서 도태되는데, 가벼운 게임들은 부족한 게임들이 보다 관대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웨이트 높은 게임은, 하는 인구도 적고 다양한 요소가 들어있어 개성이 강하다보니 플레이어들도 자기 취향에 맞는 것을 까다롭게 고르므로 부족한 게임들이 시장에서 금방 도태됩니다.

 

반면 단순한 게임들은 들어간 요소가 적다보니 뚜렷한 개성을 갖기 어렵고, 플레이어 중 '그 게임이라서 하기보다는, 그냥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과 즐길 거리를 고르다가 대충 하나로 골라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웨이트 높은 게임의 경우보다 높습니다.

또한 게임에서 재미를 느끼는 데에는 '숙지 정도'도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웨이트 높은 게임들은 익히기 어려워 사람들이 그 게임의 재미를 다 알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와 달리 가벼운 게임의 경우 쉽게 반복하게 되어 그 게임의 온전한 재미를 사람들이 알게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웨이트 높은 게임들은 덜 훌륭한 게임들이 시장에서 보다 잘 쳐내지고,

가벼운 게임들은 좀 부족해도 보다 관대하게 시장에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자신의 취미가 보드게임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매니악들도 이 정도 풀에서 게임을 접하는 게 아닙니다.

 

보통의 탁상게이머들이 직면하게 되는 게임들의 풀(pool)은 이 정도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 사람은 진짜 게임 많이 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제법 다양하게 게임을 찾아보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접하는 게임들 풀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2. 긱의 평점과 인지도

 

그리고 잔인한 현실이지만 동등하게 훌륭하다면 인지도가 높은 것이 보다 후하게 평가됩니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다기보다는 살아남은 놈이 강한 것이다'라는 말과 일면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음식 동질의 식당 두 곳 A, B가 있는데 인지도는 2:1이라면, 매출은 2:1보다 더 크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게임은 능동적인 플레이를 요하고 같이 할 상대를 보통 요하는 탓에, '그 게임을 이미 알고 있느냐'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아줄은 고스톱보다 긱 웨이트가 낮습니다. 아줄, 고스톱 둘 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게임들 한다면 아줄이 보다 익히기 쉬울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에는 고스톱만 칠 줄 알고 아줄은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스톱만 할 줄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줄은 새로 배워야 하기 때문에 고스톱에 비해 수고로움이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그에 따라 '재미-수고로움(편익-비용)'이 아줄 쪽이 확연히 낮게 되고, 결국 고스톱만 또 플레이하게 됩니다.

 

괜찮은 게임이 인지도가 낮아 낮은 순위에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알면 좋습니다.


3. 편향적인 투표자들 위주로 투표된 경우

 

확장

 

확장들은 대체로 평균 평점이 높은 편향이 있습니다. 그러니 단순히 평점이 높다고 '좋은 게임이겠구나' 할 게 아니라 편향이 있음을 짐작하고 보아야 합니다.

확장을 플레이해 본 사람들은 거의 본판을 좋아한 사람들입니다. 본판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확장을 해보지 않았겠죠.

이미 그 게임의 팬인 사람들 위주로 투표한 결과이기에 확장의 평균 평점은 높은 경우가 보통입니다.

 

가격이 높은 신작

 

그리고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자신이 높은 가격에 구매한 게임에 높은 평점을 매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순수하게 보자면 그 게임이 가격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샀다는 건, 그 게임이 자신에게 정말로 아주 만족스러울 거라고 기대한 사람들이 샀을 것이기에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순하게 보면 자신이 큰 돈을 주고 산 게임이기 때문에 일부러 평점을 높게 매긴 편향이 있지 않나 하고 볼 수 있습니다. 큰 돈을 주고 샀는데 평점이 낮으면 중고 판매를 할 때에도 불리하고, 판매하지 않는다 해도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입니다.

 

탁상게임은 중고 거래가 매우 활성화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간단히만 말해보면

탁상게임은 소수 매니악들만 취급하는 물건이라 많이 팔리지 않아 꾸준히 생산되지가 않고, 개성이 부족한 게임들은 이미 비디오 게임에 밀려 도태되었기에 살아남아 있는 게임들은 개성 있는 게임들이라 매니악들이 다양한 게임을 경험해보고 싶어하고, 내용물이 유한하다보니 게임이 뻔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 보통 한계가 있어서 오래지 않아 질리는 경우가 많고, 물건 상태를 잘 보존하면 거듭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고의 가격이 거의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신품 가격과 같을 정도입니다.

 

탁상게임 제작은 기간이 상당히 걸려 펀딩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아직 제품이 완성되기 전에, 플레이를 해보기 전에 사람들이 10점으로 투표를 하는 경우가 제법 많습니다.

가격이 높은 게임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니 평점이 높은 게임을 볼 때 '이건 구매자들이, 자기들이 큰 돈을 주고 산 거라서 일부러 높은 평점을 매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