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책-마음

2021. 8. 15. 10:43각 작품 후기(책/게임/영화/음식 등)

 

몰랐는데 나쓰메 소세키 작가도 꽤 옛날 사람이더라.
『마음』이 약 100년 전 작품이라는 걸 보고 덜컥 그 걱정부터 들었다.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이라서 유명한 것'인 걸까 봐.(난 '이야기가 훌륭한 작품'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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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가 담겨있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주요 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그것을 떠나서라도, 사회 배경이 현대 한국과 상당히 다른 배경인 작품은 읽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은 없었다, 다행히.

이 이야기는 '上' 부분과 '下'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上은 좋은 부분이 없었고 읽는 동안 여러 모로 불쾌했다,
下는, 다른 작가가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책에 下 내용만 있으면 어쩌면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등장인물로, 처음에 나오는 '나'와 '선생'이 있다.
'나'가 왜 '선생'에게 그렇게 매료된 것인지 납득이 가는 부분이 없었다.
'그냥' 수영장에서 혼자(처음엔 또 다른 사람도 있었지만) 있는 '선생'을 보고 졸졸 따라가고 교제를 한다.

 

내가 '선생' 입장이라면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육지에서 꽤 떨어진 곳까지 혼자 가서 수영을 하는데, 모르는 사람 한 명이 왠지 아무 말도 안 하면서 계속 따라온다면.
더욱이 유달리 사람 사귐을 하지 않던 선생 입장에서는 정말 이상했을 것이다.

부모님보다 선생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부모한테 학대를 받았다든지 그런 특별한 갈등이 있던 것도 아닌데)

'혹시 괜찮은 일자리 아시면 좀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다시 한 통 편지 쓰는 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그것 때문에 '나를 경멸할 것 같다'고까지 생각하는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이미 나를 경멸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은, 오히려 자신이 그렇게 경외해 마지않는 선생의 인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대학 졸업까지 했으면 가만히만 있지 말고 이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요구는 무리가 아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어른들도 '대학까지 나왔으면 좀 괜찮은 일자리 들어가야지' 하는데

모르긴 몰라도 진학율이 훨씬 낮았을 100년 전 당시 어른들의 기대는 더욱 큰 것이 당연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부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황은 아버지가 오늘내일 하셔서 가족들이 모인 상황이다.

시골에서의 집안 일이라면 아마 농사겠지. '흙 냄새'라는 말도 있고.

 

'나'는 농사를 천시해서 형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앞 내용에 전혀 나오지 않아서 이 부분에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미 일자리를 가져서 바쁘다'는 얘기가 앞서 거듭 나온 형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도 않은 동생('나')에게 '그럴 거면 집안의 일을 하는 건 어떠냐'고 하는 것이나

'나이드시고 홀로 되신 어머니를 보살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납득이 되는 이유가 있어서 하는 말인데

 

'나'는 합리적 이유 없이 단순히 공격적으로 "형이 돌아오는 게 순리겠지요", 

"형의 마음 속은 앞으로 세상에서 일을 해나라겨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라고 한다.

자기가 그런 거면서 그걸 형에게 투사한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해서였나, '여자라서 생각을 할 줄 모른다'는 식으로 쓰인 부분도 있던 것 같은데

그 부분도 거슬렸다.

 

下에서는 아름다운 문장이 조금 보였다.

그런데 이야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숙부 이야기가 나온다. 그 후 K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도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다 읽어보면 분명 K는 선생에게 중요한 인물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친구이고, 선생에게는 친구가 K밖에 없고 K에게도 친구는 선생밖에 없다.

그럼 더 일찍 언급이 있었어야 했는데(숙부, 사촌누이와 관련된 고민을 K에게 털어놓았다든지)

숙부 이야기 내내(학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K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서 내가 잘못 읽었나 싶을 정도였다.

 

선생은 숙부 때문에 '인간'을 싫어하게 되었다고 하고, '돈 앞에서 사람이 악인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 정도로 숙부가 악인은 아니었다.

숙부는 형(그러니까 선생의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가로채지도 않았고(그렇게 할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선생)가 물질적으로 전혀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을 만큼 돈을 보내주었고,

재산을 합당하게 합치고자 선생에게 자기 딸과의 결혼을 제안했다.

결혼 제안 같은 것 없이 그냥 재산을 모두 가로채고, 조카는 생활고에 시달리게 하고 나아가 학대까지 할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에 많지 않나.

선생은 타지로 가서 새로 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계속 생활을 할 정도로 재산을 챙겨갈 수 있었다.

급하게 현금으로 바꾸느라 줄어들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하숙집 아주머니가 '재산 때문에 아가씨를 나랑 결혼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돈을 많이 챙겨왔다.

선생은 오히려 인복이 있는 사람이다. 경황 없는 상황에 재산을 관리해준 친구도 있었고.

 

선생에 대해 알아갈수록 짜증이 났다.

上 부분에서부터 의심했다.

'가질 거 다 가진 양반 아닌가. 뭐가 아쉽다고 저러지?' 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계속 생활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재산이 있고,

내키면 수영이나 여행을 하러 갈 만큼 시간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도 외모도 빼어나고 성품도 좋고 자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반한 여자랑 결혼 생활도 잘 하고 있는데 말이다.

 

'선생'에게는 죄책감이 있었지.

그건 그거고,

세상에는 생활비, 시간, 사랑 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

한참을 취업을 못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돈을 벌어도 가족 병원비가 많이 들어서 궁핍한 사람들도 많고,

돈은 부족하지 않아도 종일 일만 하느라 여가 시간을 못 가져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사랑하는 사람과 잘 돼지 못해서 괴로워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의 고통에 비하면 선생의 고통은 그냥 배부른 소리로밖엔 안 보여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게다가 자업자득이다 선생은.

그리고 그 고통을 덜 수 있도록, 아내에게 고백을 할 기회는 계속 있었는데도 털어놓지 않은 것도 선생이다.

 

만약 아내가 K를 깊이 사랑했다면, 그래서 혹시 사실을 털어놓을 경우 아내가 자신(선생)을 경멸하고,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됐다면 고백을 하지 못한 게 이해가 되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내는 선생에게 "같이 묘에 가면 K가 기뻐할 거다"라고 할 만큼, K와 아내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또 답답했던 것이,

선생은 하숙집 아주머니가 '재산 때문에 아가씨를 나랑 결혼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면

괴로워 할 게 아니라 좋아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걸로(라도) 이 사람과 짝이 될 수 있어!'하고 말이다.

물론 배경은 있다, 숙부 때문에 그런 것에 민감해져있었다는.

그렇지만 돈 덕분이면 어떤가. 자기가 그렇게 그렇게 좋아했다는데, 그 여자가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면 좋은 것 아닌가.

안 좋았던 사이를 돈 하나로만 좋은 사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가씨와 좋은 사이이기도 했고.

그리고 돈 때문에 모녀가 책략을 짠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당시 선생도 알 수 있었다.

아주머니와 아가씨 쪽에서 결혼을 생각하는 것 같은 낌새를 보인 것은

자기에 대한(재산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부터니까. 아가씨도 처음부터 친절했고.

 

선생이 K를 하숙집으로 들이는 것도 정말 이상했다.

집 주인인 아주머니는 분명 반대했는데, 선생은 하숙생 주제에 자기가 뭐라고 K를 또 하숙생으로 들일 수 있단 말인가.

 

선생은 이미 자기가 아가씨를 좋아하고 있었으면서 K에게 '이성으로서의 자극을 주려고' 아가씨를 붙여주었다고 했는데, 그 부분도 이상했다.

그러면서 또 아가씨가 K와 단 둘이 있는 것 같으면 야단을 떨고.

 

K의 유서는, 사연을 아는 사람이 보면 분명 사랑에 관한 것으로 보이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생은 K가 자살한 이유가 실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보기엔 아니다.

K는 자신이 고수해 온 가치관(도를 위해 형편이 힘들어야 하고 이성을 좋아해서도 안 된다는, 금욕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과, 하나뿐인 친구의 배신에서 느낀 혼란 때문에 자살한 것이다.

이 책에서 고뇌와 씁쓸함을 느낀다면 그건 선생에게서가 아니라 K에게서 느껴야 할 것이다.

씁쓸한 것은 '진작에 죽었어야 했는데' 하는 K의 마지막 말이고,

고뇌한 것도 K이지, 선생이 아니다.

 

끝은 끔찍하다. 선생은 결국 사랑스러운 아내의 남편을 살해했다.

그것은 선생이 K의 자살에 영향을 미친 것보다 훨씬 더 큰 악행이다.

K는 선생이 직접 죽인 게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를 두고 어느 정도 신경전을 벌이는 일은 사람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K는 바로 본인의 특이한 가치관 때문에 죽은 것이다. 선생은 K의 죽음이 100%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그 정도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미안해할 것은, K를 속인 것에 대해 미안해해야 할 것이다. K가 자살하지 않았으면 선생은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이 못마땅하다.

내 가치관으로는, K가 죽든 살든 선생은 K를 속인 것에서 똑같이 잘못한 것이다.

 

자살(殺)은, 자사(死)가 아니다.

살, 죽일 살이다.

사회에서는 어째서 자살을 만류하는가?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죽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에? 모든 삶은 소중하기 때문에?

아니다.

자살도 살인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다른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다.

자살을 하면 죽는 것은 한 사람이지만, 그 살인의 피해자는 본인이 아니라 주변 여러 사람들이다.

자살은 누군가의 배우자를 살해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자식을 살해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부모를 살해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친구를 살해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이웃을 살해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조카를 살해하는 것이고, 누군가의 친구를 살해하는 것이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도, 말리려는 사람도 이 깨달음이 있으면 아무래도 자살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생은 생전에 '자기가 죽으면 아내는 의지할 사람이 없다'고 하기도 했다.

재산은 있지만... 그건 그거고

선생은 아내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고 간 것이 큰 잘못이다.

선생은 아내에게도 '불편함'을 느끼도록 대하곤 했는데, 그것을 아내는 자기 잘못 탓으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반쯤 의심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줬어야 했는데,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선생은 그 불편함을 풀어주지 않고 아내가 평생 답답해하고 괴로워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둘째는."

이 책에는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하는 부분이 한 10번은 나오는 것 같다.

적당히 하라고요...

 

만족도: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