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책-빨간 머리 앤

2021. 9. 14. 17:43각 작품 후기(책/게임/영화/음식 등)

 

아주 유명한 책인 만큼 나도 빨간 머리 앤을 옛날에 대강 알고 있었다.

아마 애니메이션 장면 일부를 지나가다가 짧게 보고, 책 앞 부분을 아주 조금만 읽었던 것 같다.

지금은 전과는 달리 앤에 입장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더라.

예를 들어 11살의 앤이 '고아원에서 4개월간 있었다', '누군가의 식구가 된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럼 그 전에는 혼자서 산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전에 같이 살았던 사람들은 있지만, 앤은 그들에게는 '사랑을 주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얘기인 것 같다.

그리고 전에 앤을 조금 보았을 때와 지금 사이 나는 '빨간 머리인 사람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그 때문에 앤을 빨간 머리로 설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앤은 숲에도, 호수에도, 길에도 새로 이름을 직접 붙여준다.

앤은 자꾸 상상을 하는데, 옛날에는 그냥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이번에 읽을 때에는 '워낙 현실이 힘들어서, 대신 상상을 많이 하게 됐던 것은 아닌가? 안됐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보니 뒤에 정말로 앤이 "제 인생은 온갖 희망이 묻힌 무덤이에요. 만일 저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제대로 살 수 없었을 거예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빨간 머리 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알기로 앤을 키워주는 아주머니 성함이 레이철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고 의아해했다.

그랬다. 앤을 키워주는 아주머니는 마릴라였다. 레이철 린드 부인은 주요 인물인 아닌데도 책의 시작을 레이철 린드 부인 이야기로 시작한 것이 독특하다.

레이철 린드 부인은 '말을 많이 전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도 하고, 관찰자인 독자 입장에서는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마릴라와 매슈 오누이는 농사 일을 도울 남자 아이를 필요로 했는데, 중간에 이야기 전달이 잘못 되어 여자 아이인 앤이 오게 된다.

 

앤의 특징은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보다도,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그리고 당돌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아주머니도 울었을 거라고요!"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ㅋㅋㅋ.

나라면 정말 생각지 못했을 말이고, 너무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후에도 앤은 "지금 저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어요." 같은 말들을 하곤 한다.

마릴라도 웃기다.

서술자의 표현도 웃기다.

 

「빨간 머리 앤」에서 어쩌면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블루웨트 부인이다.

앤을 돌려보내기로 확실히 생각하고 있던 마릴라가, 돌려보내지 않게끔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매슈도 웃기다.

상황은 앤이 콘서트에 가고 싶어하는데 마릴라가 보내주지 않겠다고 한 상황이다.

 

"난 앤을 보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해."

 

아주 일부 앞 부분 내용 밖에 몰랐던 때에 나는 길버트가 앤을 여러 차례 괴롭힌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딱 한 번 놀렸고, 사과를 했는데 그 후로 앤은 3년 이상 길버트를 냉대했다.

 

길버트 블라이드는 마지막까지 앤에게 도움이 되어준다.

다 크고 난 다음에도 봉화로 다이애나와 앤이 통신하는 내용도 웃겼다.

 

 

저 말을 하는 인물의 감정이 진정 느껴진다.

학창 시절이 종막에 다다랐을 때, '마치 세상에 종말에 온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알겠다.

 

쪽 수가 얼마 안 남은 것을 보고 앤과의 이별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쉽기도 하였다.

물론 후속편 에이번리의 앤, 레드먼드의 앤을 읽을 것이지만.

어렸을 때의 '상상력이 풍부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다 말하는 앤'은 다시 못 만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부분도 인물의 감정이 잘 느껴졌다.

 

책은 말미에서 배경을 묘사하는 방법으로 독자로 하여금 앤의 이야기를 돌아볼 시간을 준다. 

 

다른 아이들은 짜증스럽다는 말은 너무하지만

앤은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다 말하는 점이 매력이 된 것 같다.

 

저자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빨간 머리 앤」을 불과 서른넷에 썼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도 연이어 퇴짜를 맞았었다니, 지금 많은 실패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다.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도 앤에 대해 저렇게 좋게 말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빨간 머리 앤」에서 내가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은 매슈다.

매슈는 사람들 대하기를(특히 젊은 여자 대하기를) 어려워 하고(가게 점원이 여자여서 당황해, 원래 사려고 한 드레스를 사지 못하고 결국 대신 엉뚱하게 둘러대다가 갈퀴, 설탕을 사오기까지 한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의견을 말하면 "글쎄, 난 잘 모르겠구나."  하고 중립을 지킨다. 모두를 존중한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매슈는 붙임성이 없어 사교성이 아주 없는 사람으로 보였지만

끝에 결국 많은 사람들이 매슈를 찾아오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평점: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