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애니-파프리카

2022. 8. 1. 13:48각 작품 후기(책/게임/영화/음식 등)

애니메이션 파프리카는 1993년에 출간된 소설 파프리카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도입부부터 소설과 상당히 다르다. 2차 창작 나름의 가치와 재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매우 좋았던 소설과는 달리
애니메이션판은 좋지 않았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지위 등이 다르게 표현된 점도 영향이 있었지만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소설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물론 사건이 일어난 때에는 긴박함이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파프리카는 불친절하고, 요란하다.
관객들은 대부분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고 느낄 것이다. 꿈이란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설명이 없진 않다. 그렇지만 너무 훅 지나가서
소설 내용을 알고 있는(그래서 필요한 내용 설명이 언제 나오는지 특히 신경쓰고 있던) 나조차도
다른 분의 해설을 보고서야 '이 설명이 없진 않았네?'하고 알 수 있었다.

소설을 읽은 지 좀 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내용상 차이에 대해 적고 싶다.

소설에서는 DC미니의 존재 자체가 비밀(아츠코와 도키타만의)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처음부터 아츠코 이외의 연구소 내 인물들도 DC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신/심리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있는데, 환자들이 꾸는 꿈을 볼 수 있는 기기(PT기)가 발명되었다. PT기를 통해 꿈을 보아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치료를 한다.'는 배경부터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거기에 더해 파프리카는 환자의 꿈 속으로 들어가서
정신이상/불안의 '원인'을 찾아내고(파프리카가 꿈 '탐정'임은 그래서이다.), 긴장감을 해소함으로써 치료를 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냥 액션 장면부터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고나카와는 어떤 증세와 어떤 상황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다. 노세를 통해 파프리카라는 묘한 테라피스트를 소개받는다. 특이한 소개라, 만나기 전부터 호기심이 생긴다. 신비한 느낌의 파프리카를 만난다.'
이게 소설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내용이 전부 생략돼있다.
그냥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나오니 '이 작품은 판타지 영화인가보다' 싶을 것이다.

환자가 '자기 불안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이었는가'를 깨닫고 마주함으로써 불안이 해소된다는 것이 중요한데,
애니메이션에서는 파프리카가 그냥 소장을 부풀려 터뜨리는 것으로 한 번에 해결을 한다. '해소'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 감독은.
그걸 보고, '파프리카는 만능인가? 그럼 왜 다른 환자들은 저렇게 해결하지 못하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애니메이션판에서는 시마 소장이 이누이 앞에서 멀쩡히 말하다가 갑자기 정신 이상이 생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인물들이 너무 무력하게만 보인다. 그냥 꿈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닐 뿐이다.
소설에서는 아츠코가 완전 수면이 아닌 반수면 상태로 꿈에 들어가기에, 꿈 속에서의 활동도 하면서 현실 세계에서 기기 조작도 하며 원하는 대로 꿈 속의 장면을 전환하기도 한다.

원래 소설상 순서는 이러하다.
'①꿈을 볼 수 있게 된다(PT기)
 → ②꿈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파프리카)
 → ③해당 기기를 착용한 사람들끼리는, 꿈으로 만날 수 있게 된다(꿈의 공유)
 → ④DC미니를 사용한 적 있는 사람은, 기기를 착용하지 않고도 기기를 착용한 다른 이의 꿈에 간섭할 수 있게 된다.(기기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간섭하지 못한다.)
 → ⑤DC미니를 사용한 사람은 현실 세계에도 꿈의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커다란 일본 인형 등)

남의 꿈에 들어간다는 것도, '꿈'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대상이 자고 있을 때, 그것도 특정 기기를 착용한 채 자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인데(애니메이션에서도 '기기에 연결돼있는 우리의 의식에 침입할 수 있다'고 나온다.)
시마 소장은 장비를 착용하지도, 잠을 자지도, 꿈을 꾸지도 않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이상이 생긴다.
이러면 'DC미니를 쓰면 언제든 아무런 제약 조건 없이 그런 피해를 입힐 수 있다'가 된다.
어떻게 대항할 수 있지? 막막해진다.

 

반면 소설에서는, 대상에게 기기를 착용 시켜 정신질환자가 꾸는 꿈을 식역하 투사해서 차츰차츰 이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표현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제어장치를 붙여도 소용 없다, 꿈들끼리 얽혀서 더 큰 과대망상이 생긴다'고 나와, 마치 DC미니 존재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나온다.


DC미니를 도둑맞는 부분도 소설과 다르다.
소설에서 DC미니는 개발부터 기밀이었고(DC미니 개발 전에도 PT기로 꿈을 보고, 파프리카는 꿈에 들어간다. DC미니의 특징은 소형이라는 점이었다.), '5개 중 1개는 한참 전에 없어졌고, 4개 모두 남김없이 도둑맞았다'고 나온다.
그래서 도둑 맞았을 때의 놀람, 당혹감, 좌절감이 있는데(만들 수 있는 사람인 도키타도 당해서 의식이 없고)
애니메이션에서는 3개만 도둑맞고 2개를 가지고 있어서, 당혹감의 정도가 꽤 다르다.

(소설에서는 일찍 시마, 도키타가 당해 의식 불명이 된다. 이누이는 연구소 대빵이 아니다. 끝날 때까지 부이사장이다. 연구소를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대빵인 시마 소장, 그리고 DC미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도키타부터 의식불명에 빠뜨린 것이다. 소설을 보면 이누이는 대빵도 아니면서 거만한 것이 독자에게 반감을 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였는데, 애니메이션에서는 대빵이라 그리 거만해보이지도 않고, 정말로 DC미니의 위험성에 대해 말해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이누이가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DC미니 때문에 꿈 속의 일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처음 확인하는 순간도, 소설에서가 훨씬 임팩트 있고 재미있다.

 

애니메이션판에서는 고나카와가 도키타와 과학에 관해 대화할 지식이 있는 것도 뜬금없고
아츠코가 도키타에게 갑자기 말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그때는 마침 도키타가 외부 접근에 대한 필터링을 만든다고 할 때였다.

시끄러운 퍼레이드, 정신 이상자들의 헛소리 분량이 너무 많다.

애니메이션 감독 콘 사토시는 마지막 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사람들의 추한 욕망들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고,
히무로, 일본 인형이 시끄럽게 웃는 모습으로 기괴함을 표현하고자 한 것 같다.
말미에 파프리카 판치라도 뜬금없었다. 앞으로 날아가면 치마가 펼쳐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오므려져야 할 텐데.
이런 부분들이 다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다.

작품 내용에 대한 해설은 다음 두 분의 해설이 좋다.

Darksome님의 해설

https://youtu.be/A6p741ox8Vg

인레님의 해설
https://twitter.com/inle_in_error/status/1270229288634048512

 

트위터에서 즐기는 🪬 인레 🪬

“원작 소설에서 파프리카는 매춘부의 가명이었습니다. 콘 사토시는 이 함의를 지우고, [인터넷 닉네임]이라는 함의를 새롭게 부여합니다. 트위터가 바로 단적인 예시입니다. 여러분들은 현실

twitter.com

인레님의 해설은 '인터넷'에 대한 부분이 잘 돼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다른 모습이 되고, 욕망을 표출한다는 등.
소설은 출간 당시(1993년) 인터넷이 많이 보급되기 전이라 그런지 '인터넷'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데
애니메이션 감독 콘 사토시는 인터넷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인레님의 해설을 보면 소설에서 파프리카가 매춘부이고 치바 아츠코는 별로 매력이 없다고 하는데, 소설에서도 파프리카는 매춘부는 아니고 치바 아츠코는 대단한 미인으로 나온다. 그렇게 미인인 덕에 한 기자가 중요한 협력자가 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에서는 치바 아츠코가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명시되지 않았다. 외모는 아름답게 그려졌다. 오사나이가 반한 걸 보면 매력 없는 인물로 설정된 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