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책-아무튼 보드게임

2024. 8. 18. 13:46각 작품 후기(책/게임/영화/음식 등)

보드 게이머를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마 서울 올라온 제주도 사람이  우연히 서울에서 제주도 사람을 만나면 이런 반가움을 느낄 것이다.

보드 게이머가 밀집된 곳을 가지 않고서야, 보드게이머를 만나는 건 그렇게 어렵다고 할 만큼 보드게이머는 드물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bulemarble&no=481549&page=27
이 글을 보고 호기심을 못 참고 이 책을 읽었다.
〈아무튼, 보드게임〉


보드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너무 궁금할 이 책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려드리니
여러분은 시간을 아끼시기 바란다, 저자분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 페이지가 이 책에서 가장 재미 있는 페이지였다.

이 책을 3번 읽었다.
좋아서가 아니라 집중이 안 돼서.
읽고, 브런치 분위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 그렇지, 에세이면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내용이 너무 이 주제, 저 주제로 튀어나간다.
뜬금없이 동성애자 얘기가 나오고, 4명이 좋다는 얘기가 나왔다가 3명이 좋다는 얘기가 나온다. 도박과 게임의 차이를 얘기하다가 갑자기 다른 얘기로 화제가 전환되는데, 끝맺음도 시원하지 않고 전환이 자연스럽지 않다.
김초엽 작가가 명 수상작을 낸 친구여서 그런지 거듭 언급된다.

 

다른 이들의 소감


이번에 알았는데
‘아무튼 ○○○’이라는 시리즈가 있는 것이었다.



목차


1. 나는 보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을 신뢰한다
“보드 게임을 하려면 어느 정도 우호적, 개방적이어야 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신뢰한다. 책, 보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다른 세상을 탐하는 것이다, 타인이 품은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라고 한다.

우호적...일 것까지는 아니고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맞추는 게 있어야 이 오프라인 취미를 지속하기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2. 조커가 보내는 오묘한 미소
‘도박의 자극, 도박과 게임의 차이’ 이야기를 한다.
〈루미큐브〉는 어느 한 편으로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 패를 남이 이용 못 하게 계속 들고 있으면, 남에게 크게 점수를 줄 리스크가 있는 것이다.  
21세기 게임 중 그렇지 않은 게임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3. 세 명이 가면 재수가 좋다
‘4인-마작-징크스-주사위 신, 주사위 감옥(정화)’ 이야기를 한다. 페북 계정 복구에 보증인 친구 3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4. 친구 잃는 게임 아니에요!
초여명 RPG 가이드에 있다는 문구가 인용된다. “여러분의 목적은 재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옆 사람을 존중하세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세요. 그리고 앞으로도 같이 놀아주세요.”
책 표지에 쓰인,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문장은 인용문이었다.
저 문장을 쓰신 분께서는 TRPG에 대해 하신 말씀이지만,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게임인 탁상 게임에 대한 말씀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나는 뒷 문장이 더 인상 깊었다.
“앞으로도 같이 놀아주세요.”
“놀아주세요”라는 말은 어린 아이에 대해 하는 말 같다.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뭘 못하나? 보드 게임은 같이 해주지 않으면 거의 못 하는 게 맞다. 그리고 게임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노는 것이다. 비교적 복잡한, 소위 무거운 게임을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보드 게임을 너무 특별하게 수준 높은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보셨으면 하는 문장이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 붙은 말일 것이다.
보드 게임은 스스로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1~2년 하고 접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같이 하는 사람이 정말 귀하다.
이기는 게 다라고 생각하면 접는 경우가 많을 것 것 같다. 게임을 하는 것은 노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이 취미를 더 지속하기 좋은 것 같다.

5. 당신의 플레이는 어느 유형인가요
big 5 분류를 바탕으로 저자는 이렇게 유형을 구분해보았다.


6. 죽음마저 죽으리니
이 장에서 저자는 크툴루 테마 게임에서의 희생, 동성애자 윤광호씨(소설), 레거시 이야기를 한다.

6.1. 크툴루 테마 게임에서의 희생
나도 〈아컴호러 카드게임〉 에서 어려운 상황을 만나 ‘...내가(적을 처치한다, 대신 내 몸을 사리지 않고) 죽어야 될 것 같아’ 한 경험이 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건 아닌데, 처음에는 모두 무사한 채로 목표롤 달성할 생각이었는데 플레이하다보니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점은 특별히 좋은 점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자에게는 그 느낌이 약하겠지만.

이런 극한 상황을 경험하게 하려면, 게임을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게임이 어려우면, ‘겨우 성공했다!’보다 ‘너무 어려워서 실패했다...’ 하는 경험을 더 많이 줄 위험이 있다.
그러면 게이머들이 싫어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원래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들이 있다’고 하는 러브크래프트 세계관을 입힘으로써 덮었다, 러브크래프트 세계관 보드 게임들은.
극적인 상황은 인상 깊게 남는다.
전자 게임도, 어려운 게임에 유독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우면 좋은 것인가? 더 어려우면 더 재미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클리어하면 보통 더 이상 안 하고, 가장 자극적인 것이 눈에 띄고, 게임 방송에서는 방송인을 놀리기가 좋아서 어려운 게임이 주목을 받은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6.2. 동성애자 윤광호씨

"앞에 서 있다는 이유로 당연한 것처럼 신변을 위협당하고 의무적으로 조롱을 감내해야 하는데, 최소한의 규제조차 없어 숨 쉬는 공기마다 노골적인 증오와 낙인이 독성 물질처럼 부유하는데… 어떻게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겠어요. 그건 아무리 뱉어내고 씻어내도 얇게 핀 곰팡이처럼 계속 살아남아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어요. 괜찮은 사람도 괜찮을 수가 없다고요."
폐암 판정을 받을 때 광호 씨의 폐는 유해 물질을 10년쯤 들이마신 사람처럼 상해있었다. 그는 담배 한 번 피운 적 없는 사람이었다. 광호 씨가 들이 마신 해로움은 어디서 왔을까. 의사도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의학으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아픔이다. 여기에는 여러 이야기가 들어갈 빈틈이 있다.

‘담배 한 번 피운 적 없이, 귀책 사유 없는 광호 씨가
그저 동성애자라면 증오하고 위협하는 유독한 분위기 때문에 숨 쉬기만 해도 고통 받았다’고 약간 돌려 말하고 있다.

앞에 서 있다는 이유로 당연한 것처럼 신변을 위협당하고 의무적으로 조롱을 감내해야 하는가. 최소한의 규제가 없다는 말은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도 같다.
이성애자가 동성애자에게 폭행, 모욕을 한다고 해서 폭행죄, 모욕죄가 면피되지 않는다.

퀴어 축제라는 걸 본 일이 있다.
성기만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거의 전라 차림으로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성애자가 똑같이 공공장소에서 그런 행위를 해도,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성소수자라는 말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다.
동성애자가 대표적으로 언급되는데, 사회의 동정이 필요한 약자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동성애자이든 이성애자이든도 나이 들고도 경험을 못 해본 사람들이 진정 성소수자가 아닐까.
국립의과학지식센터 연구에 따르면 남자 기준 75.8%, 그러니까 약 4명 중 3명은 24세 이전부터 성경험이 있다고 한다.
95.6%는 29세 이전부터, 99.7%가 34세 이전부터.
4.4%에 해당하는 30세 이상 무경험자, 0.3%에 해당하는 35세 이상 무경험자가 진정 성소수자가 아닌가 싶다.

6.3. 레거시
인간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심리가 있다.
A, B 두 버튼이 있다. A를 누를 때마다 얻는 보상이, B를 누를 때마다 얻는 보상보다 언제나 크다. 누르지 않는 버튼은 점점 작아지다가 소멸한다.
그럼 A만 누를까? A만 누르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실제 인간은 B가 소멸하는 걸 두고 보지 못해 B도 누른다는 실험이 있다.
‘B가 언제나 A만 못하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설계된 것이고,
현실에서는 다양한 것을 남겨두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니, 이해가 된다.
상실할 수 있다고 하면,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다.

재봉틀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옛날 재봉틀은 너무 튼튼해서 고장이 안 나, 소비자가 한 번 구매하면 계속 써서 재구매가 별로 없었단다.
그래서 재봉틀 제조사가 톱니바퀴를 강한 금속에서 약한 플라스틱으로 바꿔, 수명을 단축시켜 재구매를 유도했다고 한다.

보드 게임 시장은 중고 시장이 활발하다.
보드 게임 중고 시장엔 새것 같은 물건이 많다.
그런 만큼 가격도 새것 같고.

게임이 중고로 계속 도는 것보다는, 소모가 되는 것이
판매사 매출에 좋을 것이다.
레거시가 나온 것은 ‘상실할 수 있다면,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다’보다 이쪽이 이유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고.

게임이 너무 많이 나왔다.
지금까지 출시된 게임만 평생 해보려고 해도 다 할 수가 없을 만큼 많다.
‘여러분, 산 게임 각각 몇 번이나 돌렸나요? 10번 돌린 게임이 몇 개나 되나요? 이거 12번 돌리는 게 적은 게 아닙니다’라고 팬데믹 레거시 판매사는 생각했을지 모른다.

7. 전략 게임 못하는 사람의 인생 전략 짜기
“게임에서는 목표, 진척도가 명확하다.”,
“스플렌더를 좋아하는데, 점수 없는 카드도 쓸모가 있듯, 인생의 경험 중 쓸모 없는 건 없다.”,
“뭔가 포기해야 다른 나머지를 제대로 할 수 있다.”
로 요약된다.
목표, 진척도가 명확하지 않은 게임도 있다. 중요한 건 아니다. 명확한 게임들이 많이 있고, 게임의 그런 점을 좋아해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험 중 쓸모없는 것은 없더라... 라는 얘기는 다른 데서도 들었는데
글쎄, 뭔가 이뤄낸 사람들이 그렇게 말들 하더라.
그런데 뭔가 이뤄내기 전에 시드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을 말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포기해야 다른 나머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나는 특히 〈마르코폴로의 발자취〉에서 느꼈다. 게임 막바지, 계약을 완수하면 계약 승점을 얻을 수 있고, 여행을 하면 목표 도시 승점을 얻을 수 있고, 어떤 행동 장소에서 자원을 승점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고 싶어하면 장고하게 된다. 장고한다고 부족한 자원이 늘어나진 않는다. ‘이 중에 뭐 하나는 포기해야겠구나’ 생각하면 빠르게 길을 찾을 수 있다.
게임은 본디 생존에 관한 것이라 깨달음을 준다.
바둑의 10훈이 있는데, 비단 바둑에만 교훈이 있는 것이 아니다.

8. 그게 진짜 게임이라고
게임 만들기에 관한 단편 소설 〈저예산 프로젝트〉가 소개돼 읽고 싶어졌다.
“인생 게임을 고르고, 이유를 생각해보라. 특별한 경험을 시켜줘서일 것이다. 진짜 게임은 현실에서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볼 수 있게 해줘 진짜 인생을 알려준다.
테트리스 테마가 사람들을 가스실에 던져 죽이는 것이었다면 불쾌했을 것이다. 외양도 메커니즘만큼 중요하다.”
라고 한다.

인생 게임을 고르라면 물론 특별한 것을 고르게 된다. 비슷한 것은 대체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꼭 그게 더 즐거운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닐 수 있다.
아그리콜라를 하면 농부 역할을 해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대부분의 게임에는 롤플레잉이 있다. 그래도 모든 게임이 롤 플레잉 게임인 것은 아니다. Hex 같은 추상전략 게임은 ‘내가 어떤 역할이 되어본다’는 느낌은 딱히 없다.
테마가 중요하다는 얘길 할 때 살육과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들며 테마가 메커니즘‘만큼’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와닿지 않는다.
’요리 플레이팅을 할 때 살육을 표현하면 불쾌하다. 그러니 테마가 플레이팅에 중요하다.‘
이런 말은 와닿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겨진다.




만약 ’게임은 합리적 선택에 관한 고민을 하게 해주고, 색다른 경험을 시켜줄 수 있으며, 깨달음을 준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면 이 책이 좀 의미 있게 여겨졌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으로서도 이 책은 시간, 수고가 좀 비효율적으로 드는 것 같다.

덧붙여, 이 '아무튼 ○ ○ ○ ' 시리즈는 책 가로가 11cm다. 이렇게 좁으면 안쪽은 굽어서 읽기가 불편한 단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