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매너 관련

2021. 1. 10. 12:29탁상게임 취미생활

제가 전에 쓴 '보드게임 플레이는 어떨 때 재미없을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언행' 부분을 떼어왔습니다.

 

‘이러이러한 행태를 보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더라’하는 내용을 미리 모임 공지글로 올려두는 것이 한편의 사전 조치가 될 수 있겠습니다.

글 아래쪽에 요약이 있으니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분 나쁘게 만드는 언행은 비단 보드게임 플레이에서만이 아니고 다른 어느 활동에서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기분 나쁘게 만드는 언행이 행해지는 원인은 그 사람이, 그 언행이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 만한 것이라는 걸 몰라서, 또는

‘해도 되는 것’이라고 해서 ‘해도 좋은 일’인 것은 아니라는 걸 잘 몰라서

라고 저는 생각하고,

이것이 반복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지적하면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싸움날까 봐 조심스러워 해서’, ‘좋게좋게 넘어가자며. 핵심을 짚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고 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짚어야 해결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되었으면서 누군가 참기만 하거나, ‘그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알아서 이해해주겠지’ 하는 태도는 문제를 방조하고 키웁니다.

 

비매너 언행은 지적하고, 가르쳐주는 게 사회에 이롭습니다.

화를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화는 안 내는 게 좋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얼마든지 정중하게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문제가 일어난 뒤에 얘기하기보다 사전에 주의를 주는 게 좋습니다.

 

우선 ‘왜 남의 재미도 신경써야 하는가?’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면 보드게임 플레이는

자유롭게 안 해도 되는 것을, 즐거우려고 상대방도 개인 비용(시간 등)을 들여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곧 ‘해도 좋은 일’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글 주제에만 맞게 간단하게만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플레이 도중 부정적인 견해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게임 재미 없네요”, “차라리 ○○가 낫다”.

반대로, 별로 재미없는 게임도 마치 무척 재미있는 척(남을X 자신을O 속이기)을 하면 정말로 좀 재미있어질 수 있습니다.

감정은 일면 동화가 되는 점도 있고, 재미 느끼기에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은 재미를 떨어뜨리는, 무시 못할 영향력이 있습니다.

“근데 솔직히 자기 느낌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네, 그렇지만 해도 되는 말이어도 안 하는 게 나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에서는 “이 게임 재미없네요”,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지...”,

(팀 대 팀 게임에서 팀원에게)“OO님이 (그 역할이었으면) 그때 이렇게 했어야죠, 뭐하셨어요?”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재미없다는 말은, 플레이 다 끝나고 나서 하면 됩니다.

 

팀원을 나무라는 것도, 친한 사이이면 당연히 받아줄 어느 정도 선은 있을 겁니다.

그래도 정도껏 해야 합니다. 자기가 못하고 싶어서 못한 것도 아닌데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 기분이 많이 상합니다.

 

너무 징징대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재미를 떨어뜨립니다.

견제 한 번 당했다고 정색하시고 몇 시간 동안 징징대시는 분도 봤는데, 퍽 괴로웠습니다. '다음 수 어떻게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그걸 못하게 돼서 몇 점을 잃게 됐다'고...

(정상적인 규칙에 의한 다른 사람의 행동 하나에 의해 실현 불가능하게 될 전략이라면, 애초에 그다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전략입니다.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유를 하고자 이미지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탈룰라 시리즈로 유명한 대화 중 하나입니다. (공개적인 이미지이지만 제 지인은 아니라서 혹시 몰라 이름은 가렸습니다.)

 

어머님이 사주신 옷이라고 해서 ‘이상한 회색잠바’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말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위 대화에서 왼쪽 화자는 그걸 이상하다고 하는 말이

지인, 지인 어머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자 미안함을 느끼고, 취소하려고 합니다.

 

비록 ‘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닌 말’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 기분 나쁘게 할 만한 말에 해당되는지 생각해보고, 해당된다면 삼가는 게 좋습니다.

 

'성의없이 플레이에 임하는 태도'도 플레이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플레이 중에 졸거나, 휴대폰게임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아마 대상이 안 맞는 경우일 것입니다. 물론 다른 게임을 한다고 해도 이런 태도는 사전에 주의를 주는 게 좋습니다.

 

본인의 최고 성적을 추구하지 않는 플레이,

이는 ‘남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싶어서’ 또는 ‘어차피 자신의 높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가 동인이 될 것입니다.

전자(이하 트롤링1)가 트롤링인데, 트롤링의 의미는 현재 좀 넓어졌고 게임 세계에서는 후자(이하 트롤링2)도 트롤링이라고 불리곤 합니다.

실제 일어나는 빈도는 후자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이런 플레이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보통 모든 플레이어가 ‘본인의 최고 성적을 추구하는 플레이’를 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플레이를 하기에, 그에서 벗어난 행동이 보이면 자신의 전략에 큰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파악한 '투입-산출 구조'가 불안정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와 관련한 재미를 못(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여러 행동 또는 오랜 시간 공(수고)을 들인 것을 남이 간단한/짧은 행동으로 허무하게 무너뜨리는 것이 되곤 합니다.

 

그점에서 삼가야 할 태도입니다만,

트롤링에 대해 ‘자신의 재미는 추구하지 않고 남 엿되보라고 하기만 하는 이상한 행동’이라거나 ‘진중한 보드게임 플레이라는 활동에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불경한 행동’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는.

‘남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트롤링1 관련)도 생존에 연관되는 욕구이고, ‘어차피 현재 나는 크게 뒤져서, 1등이 되려는 노력을 해봤자 무의미하니 게임 빨리 끝낼래 / 내 바로 앞 사람만 역전할래’(트롤링2 관련) 하는 것도 자신의 유의미한 이득을 얻으려는 자연스러운 태도입니다.

 

저는 보드게임 취미생활 하시는 많은 분들이, 트롤링이라는 행태도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해한다는 것은 꼭 공감하거나 용납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선거와 관련하여 ‘사표 방지 심리’가 있죠.

갑, 을, 병 후보 중 갑 후보를 가장 선호하지만, 갑 후보에게는 표를 줘봤자 탈락할 것 같아서 을, 병 중 선호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죠.

 

생물은 자신의 행위가 유의미한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행위를 했는데 그것이 유의미한 이익이 되지 않으면 재미도 못 느낍니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에서 ‘패턴이 너무 어려우면 학습이 안 되므로(이득이 없어서) 재미를 못 느낀다’는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블라다크바틸도 이점을 이해해서 쓰루디에 ‘명예로운 퇴장’ 규칙을 굳이 설명서에 담은 것일 겁니다.

 

‘노력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하면

그래도 다른 플레이어들을 위해, ‘가능한 한 본인의 최고 성적을 추구하는’ 플레이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지만

다른 플레이어들도 그럴 때 그 플레이어가 재미를 별로 못 느끼고, 어쩌면 고통스러워 할 수도 있다는 점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문제 상황이 잘 일어나지 않도록

- 설명 잘 하기

- 작가가 잘 만들기

- 봐주기(희생을 요하므로 셋 중 가장 선호하지 않는)

가 예방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 트롤링은, 판단에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견제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나를 견제하다니, 트롤링이지 않느냐’고 해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 플레이어가 가장 위협적이라서 견제한 것일 수 있습니다.

게임 상황은 누가 가장 유리한지 정확하게 판단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하게 파악이 잘 되면 의욕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라서, 작가들은 이를 숨기려고 하곤 합니다.

 

생각지 못한 견제를 받았다면 ‘트롤링 아니냐’고 하기 전에, ‘저 사람은 나를 위협적이라고 느꼈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는 게 좋습니다.

섣불리 단정짓지 말고요.

 

뜬금 없는 티밍도 트롤링 비슷하게 다른 플레이어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개인전 게임인 레지스탕스쿠를 6인이서 시작하여 하다가 갑, 을, 병 3인이 남았을 때,

갑, 을이 “아, 저희는 원래 먼저 공격 안 하기로 했어요” 하면서 병만 집중 공격해 병이 탈락된 경우, 병은 재미가 뚝 떨어질 수 있습니다.

병 입장에서는 갑자기 다른 게임이 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전 게임은 개인전으로 할 것이라고 기대가 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팀을 이루고 싶으면 게임 시작 전에 얘기해서 동의를 구하고 하든 다른 게임을 하든 하는 게 낫습니다.

 

설명자가 설명을 잘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하죠. 설명자도 청자도 불완전할 수 있다고 미리 생각하고, 가능한 한 이해해주려는 태도를 갖는 게 좋습니다.

설명은 잘하기 어렵습니다. 최적의 순서로 설명하지 못할 수도 있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표현을 쓸 수도 있고, 일부 누락하거나 틀리게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아까 이거 말씀 안 해주셨다’, ‘아까는 이렇게 다르게 말씀해주시지 않았느냐’고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자기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따지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

마음에 평온을 유지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희는 승부욕이 너무 강한 분은 받지 않습니다.”

범죄의 원인도 욕구에 돌리시는 분들도 계신데

욕구는 동인이 되는 것일 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되면 나쁠 게 없고 오히려 긍정적인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승부욕이 문제가 된다기보다는

승부욕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느라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행위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반칙을 하거나, 자신의 패배에 대해 불쾌함을 지나치게 표출하는 경우, 그리고 바로 위에 쓴 '룰 설명 부족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 등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도 저는 앞서 거듭 말씀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핵심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면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싸움날까 봐 조심스러워 해서’, ‘좋게좋게 넘어가자며. 핵심을 짚지 않고 대충 넘어가려고 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귀인을 틀리게 하는 것은 어떤 이들을 억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즐거움이란 것은 이기는 것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데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승부욕이 강한 분들은, 이 점을 이해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승부욕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어진 어떤 언행들이, 비매너 언행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주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

 

요약해보겠습니다.

 

언행 관련

-문제를 인식했음에도 덮어버리거나 귀인을 틀리게 하는 것을 지양하기.

-플레이 도중 남 재미 떨어뜨릴 수 있는 부정적 견해(재미없다/왜 하냐 등), 부정적 감정 표출(당해서 화 난다, 왜 나를 견제하느냐 등) 자제하기. 반대로 재미있어하려고 노력하고, 재미있는 척하기(재미없다는 건 다 끝나고 나서 얘기하기).

-팀원 나무라는 것 자제하기.

-조는 것, 휴대폰게임 하는 것 삼가기.

-소용없어 보여도 끝까지 본인 최고성적을 추구하는 성의 있는 플레이 하기.

-개인전 게임은 개인전으로 하기.

-승부욕을 부리다가 비매너 언행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이기는 것만이 즐거움 원(源)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기.

 

'보드게임 플레이는 어떨 때 재미없을 수 있는가' 글 전체를 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설명이 잘 되지 않으면 재미없어질 수 있다, 설명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어떤 게임이 안 맞을 사람에게는 그 게임을 권하지 않는 게 좋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설명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정리해서 글을 다시 쓰려고 합니다.)

 

그리고 게임 매너 관련해서 추가적으로는

- 시간 약속 잘 지키기
- 악취 풍기지 않게 잘 씻기(담배 냄새도 주의)
- 구성물 손상시키지 않기

정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은 '이런 게 매너이니까, 모임 가기 전에 익혀두세요'라고 하려고만 쓴 것이 아니라

'모임에서 이러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라고 하려고 쓴 것이기도 합니다.